38년 철권통치 캄보디아 훈 센 총리···장남 훈 마넷이 총리직 잇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려 38년간 한 사람이 총리를 하는 게 가능할까요?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런 국가가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인도차이나반도 중간에 위치한 ‘캄보디아(Cambodia·កម្ពុជា)’입니다. (관련글: 캄보디아는 어떤 나라인가?···날씨·환율·시간·인구·선거)

우리에게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 사원 등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캄보디아는 영국이나 네덜란드, 태국과 같이 국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면서 의회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인접한 베트남과 라오스 때문인지 종종 사회주의 국가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캄보디아에 무려 38년 동안 총리를 맡아 철권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훈 센(Hun Sen·ហ៊ុន សែន)’은 어떻게 캄보디아를 한 손에 움켜쥐게 되었을까요? 지난 케이팝에 빠진 캄보디아 공주 ‘제나 노로돔(Jenna Norodom)’ 글에 이어 이번에는 캄보디아의 훈 센 총리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32세 세계 최연소 총리 ‘훈 센’

1951년 깜뽕짬 주에서 태어난 훈 센은 베트남 전쟁에 비협조적이라 이유로 축출당해 1970년 베이징에 망명 중이던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캄푸치아왕국, 1953~70)을 따라 친미정권인 론 놀 정권(크메르공화국, 1970~75)에 대항하는 크메르 루주의 부대 지휘관으로 활약합니다.

※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ខ្មែរក្រហម): ‘붉은 크메르’라는 뜻을 가진 캄보디아의 급진 좌익무장단체로 일명 킬링필드로 불리는 집단학살로 악명높다

1975년 노로돔 시아누크와 크메르 루주가 연합해 결국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캄보디아의 정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훈 센은 한쪽 눈에 의안을 하고 있는데 이 당시 프놈펜을 공격하다 부상을 입은 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
캄보디아 훈 센(Hun Sen) 전 총리 페이스북

하지만 크메르 루주는 우리가 흔히 ‘킬링필드(Killing Fields·វាលពិឃាត)’라고 알고 있는 참혹한 대학살극을 벌입니다. 당시 캄보디아의 지식인 대부분이 학살당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캄보디아는 피로 물들게 됩니다.

크메르 루주의 잔혹한 정책에 실망한 훈 센은 폴포트 정권(민주캄푸치아, 1975~78)을 떠나 1977년 베트남으로 망명합니다. 베트남에서 반 크메르 루즈 군대를 양성하던 훈 센은 1978년 후반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크메르 루주의 세력이 약화되자 헹삼린 정권(캄푸치아인민공화국, 1979~90)과 함께 하게 됩니다. 헹삼린 정권에서 요직을 거친 훈센은 1985년에는 드디어 32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총리에 오르게 됩니다.

철권통치의 시작

구 소련의 지원을 받는 세력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간의 다툼이 이어지는 캄푸치아 사태로 극도로 혼란했던 80년대를 지나 탈냉전 시대의 도래로 UN에 의해 캄보디아에 유엔캄보디아과도행정기구(UNTAC, 1990~93)가 설립됩니다.

1993년 1차 총선으로 노로돔 시아누크의 아들인 제1총리 라나리드와 제2총리 훈센간의 연립정부가 구성됩니다. 하지만 라나리드와 훈센의 불안한 동거는 오래가지 못해 1997년 양측간 무력충돌이 발생하며 라나리드 세력은 결국 축출됩니다.

1998년 2차 총선을 통해 캄보디아 인민당(CPP·Cambodian People’s Party)이 승리하며 훈 센이 단독 총리로 취임해 독주 체제가 시작됩니다. 2003년 3차 총선, 2008년 4차 총선, 2013년 5차 총선, 2018년 6차 총선까지 모두 승리하며 장기집권하게 됩니다.

특히 2013년 4차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제1야당을 2017년 반역 혐의로 강제 해산시킨 뒤 2018년 6차 총선에서는 캄보디아 인민당이 전체 125석을 모두 차지하며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합니다.

훈 센의 ‘캄보디아’

권력에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법. 훈 센은 정치 권력에서 눈을 돌려 캄보디아의 경제 권력까지 손을 뻗치게 됩니다. 훈 센 일가는 캄보디아의 주요 언론을 비롯해 금융, 관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 7월 치뤄진 총선에서 집권당인 캄보디아 인민당은 82% 득표율로 125석 중 120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대항마로 여겨졌던 촛불당(CP·Candlelight Party)이 5월 캄보디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총선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선 참여가 박탈당해 사실상 후계자 선정을 위한 대관식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총선 이틀 후 훈 센은 국영TV를 통해 “총리직을 계속하지 않고 장남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 밝힙니다. 모두가 예상했듯이 훈 마넷으로 이어지는 세습을 통해 지배력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8월 7일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의 차기 총리 지명과 22일 의회의 승인을 통해 훈 마넷이 총리로 공식 취임하며 훈 일가의 세습이 완성됩니다.

훈 마넷 총리로 이어진 권력세습

훈 마넷(Hun Manet·ហ៊ុន ម៉ាណែត, 1977년생)은 1999년 캄보디아인 최초로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 영국 브리톨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합니다. 1995년 캄보디아 왕립군(RCAF)에 입대한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캄보디아 왕립군 부사령관과 육군 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겸임하고, 대터러 태스크포스를 이끌었습니다.

2021년 집권당인 캄보디아 인민당은 훈 마넷을 차기 총리 후보로 선출합니다. 그리고, 총리로 임명되기 위한 필수요건인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훈 마넷은 2023년 총선에 출마하게 되고 결국 초선 의원이 되자마자 총리에 오르게 됩니다. 훈 센 또한 집권당 대표와 국회의원직은 유지하며 안정적인 승계를 위해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훈 센은 “총리의 아버지로 적어도 2033년까지 다른 직책을 맡아 일을 계속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 아들 훈마넷
캄보디아 훈 마넷(Hun Manet) 총리 페이스북

다수의 최빈국들이 끊임없는 권력다툼의 악순환에 빠져 국민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캄보디아는 훈 센의 철권통치로 오히려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훈 센의 뒤를 이어 그의 장남 훈 마넷이 총리직을 맡으며 훈 일가는 계속해 캄보디아를 지배하게 됩니다.

장남 훈 마넷 총리 뿐 아니라 훈 마넷의 새 정부에는 그의 친인척과 측근의 자녀들이 고위직에 포진합니다. 막내아들인 훈 마니(Hun Many·ហ៊ុន ម៉ានី, 1982년생)와 조카사위인 넷 사보에운(Neth Savoeun·នេត សាវឿន, 1956년생)도 내각의 고위직을 맡으며 훈 센 자신은 총리직에서 물러나지만 훈 일가의 지배력은 오히려 강화됩니다. 훈 마니는 공무부 장관, 경찰청장인 넷 사보에운은 부총리직에 오릅니다.

하지만, 몇 차례 총선에서 확인했듯이 야권 정치세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야권과 시민세력이 훈 센에서 훈 마넷으로 이어지는 세습을 마냥 지켜보기만 할지 주목됩니다.

훈 일가가 지금과 같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이어가는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장의 과실 상당부분은 훈 일가에게 돌아가겠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낸다면 일가의 통치는 큰 저항없이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캄보디아는 과감한 투자 유치와 무역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일대일로 계획에 따라 캄보디아에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 중인 중국이 있습니다.

중국은 캄보디아의 도로, 항만, 공항 등 인프라 확충에 앞장서고 있으며 수도 프놈펜과 타이만을 끼고 있는 시아누크빌은 중국자본이 세운 고층빌딩이 스카이라인을 뒤덮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권력세습으로 인해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또한 수도 프놈펜에 ‘우정의 다리’ 건설을 위한 대규모 차관을 지원하는 등 캄보디아에 대한 다양한 협력을 추진 중이기도 해 캄보디아의 권력세습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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