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동작이었습니다. 2025년 2월, 걸그룹 하츠투하츠(Hearts2Hearts)의 카르멘(Carmen)이 엠카운트다운(M!Countdown) 데뷔 무대를 앞두고 MC 앞을 지나가면서 상체를 낮추고 한 손을 아래로 길게 내렸습니다. 이 장면을 담은 게시물이 며칠 만에 수십만 조회를 넘기면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쪽에서 동시에 화제가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전통 예절, 카르멘의 쁘르미시가 알려준 것
익숙해 보였지만, 한국 팬들이 이 동작에서 읽어낸 “실례합니다”의 뜻과 실제로 저 몸짓을 작동시키는 원리는 출발점이 서로 다릅니다. 익숙하다는 감각이 이해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전통 예절을 조금 들여다보면 그 거리가 보입니다.
화제의 장면은 인터뷰 전
영상은 한 장면뿐입니다. 2025년 2월 27일 한 팬이 올린 게시물에 카르멘이 무대 직전 인터뷰 자리로 이동하며 MC 앞을 지나는 순간이 담겼습니다. “인도네시아식 매너”라는 문구가 붙자 현지 이용자들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그 주에 조회수가 90만 회를 넘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통신원 리포트가 이 사례를 다룰 무렵 같은 게시물의 조회수는 237만 회를 넘어섰습니다. 한 사람의 걸음걸이가 두 나라의 문화 이야기로 번지는 데 몇 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카르멘은 발리(Bali) 덴파사르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무렵까지 그곳에서 자랐고, 2025년 2월 하츠투하츠로 데뷔하며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는 첫 인도네시아 출신 아이돌이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전통 예절
동작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타인의 앞을 지날 때 상체를 낮추고 한 손을 아래로 내리며 “쁘르미시(Permisi)”라고 말하는 행동입니다. 내가 당신의 시야를 잠시 가로막는다는 상황에 대한 양해 표시여서, 웃어른 앞에서든 또래 앞에서든 똑같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국의 인사와 갈라집니다. 한국의 인사가 두 사람 사이의 위계를 확인하는 쪽에 가깝다면, 쁘르미시가 겨냥하는 것은 사람보다 상황입니다. 그래서 손아랫사람 앞을 지날 때도 같은 동작이 그대로 나오고, 한국 시청자가 카르멘의 몸짓에서 느낀 낯선 정중함의 정체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이 동작이 인도네시아 어디서나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현지 매체들도 “일부 지역에서 하는 동작”이라고 적었고, 양해를 구할 때 쓰는 말부터 지역마다 다르게 굳어져 있습니다. 같은 몸짓에 붙는 이름이 하나로 모이지 않습니다.
| 표현 | 언어·주 사용권 | 쓰임 |
|---|---|---|
| Permisi | 인도네시아어(전국) | 표준 표현. 지역을 가리지 않고 통함 |
| Punten | 순다어(Sunda), 서자바 | 상대가 Mangga(그러세요)로 받아 줌 |
| Nyuwun sewu | 자바어(Jawa), 중·동부 자바 | 직역하면 “천 번 양해를 구합니다” |
| Santabi | 바탁어(Batak), 북수마트라 | 양해와 사과를 함께 뜻함 |
| 자료: 인도네시아 지역 문화 소개 자료 및 언론 보도 종합, 2018~2025년 | ||
표준 인도네시아어 permisi 외에 순다와 자바, 바탁 지역에는 각각 다른 말이 따로 있습니다.

이마를 손등에 대는 인사
인도네시아에서 사람의 몸은 높낮이가 있는 지도처럼 읽힙니다. 영혼이 머무는 자리로 여겨지는 머리가 가장 높고, 가장 낮고 부정한 자리로 취급되는 발이 그 반대편에 놓입니다.
살림(Salim)이 그 지도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웃어른의 오른손을 잡아 손등을 자신의 이마나 코끝에 가져다 대는 동작입니다. 가장 높은 부위를 상대의 손에 갖다 대면서 몸의 순서를 스스로 뒤집어 보이는 셈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인사입니다.
자주 함께 묶이는 숭끔(Sungkem)은 계통이 다릅니다. 무릎을 꿇고 손을 잡는 숭끔이 자바 왕실 명절 의례에서 비롯돼 지금도 르바란이나 혼례에 남아 있다면, 매일 아침 어른께 올리는 살림은 자바 고유 문화와 이슬람이 섞이며 자리 잡은 일상 관습입니다.
같은 지도에서 나머지 규칙도 읽힙니다. 오른손은 정결한 손이라 악수와 물건 전달과 식사에 쓰이고, 왼손은 위생 용도로 남겨 둡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상대를 향해 발바닥을 보이는 자세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실례가 됩니다.
예의가 정하는 대화의 속도
몸의 서열이 눈에 보이는 예절이라면, 말에는 눈에 띄지 않는 질서가 있습니다. 직접적인 거절인 “Tidak(아니오)” 대신 “Belum(아직요)”이나 “Nanti(나중에요)”, “Insya Allah(신이 허락하신다면)” 쪽을 고릅니다. 상대의 체면을 지키려는 선택입니다. 자바 문화의 에우 파케우(Ewuh Pakewuh)라는 개념이 이 습관의 배경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대화 중의 “Ya(네)”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이 대답은 동의나 수락보다 “듣고 있습니다”라는 수신 확인에 가깝게 쓰입니다. 회의에서 여러 번 나온 “Ya”를 모두 합의로 적어 왔는데 정작 그다음 진행이 멈춰 있는 경우가 여기서 생깁니다. 조화를 지키는 이 화법이 조직 안에서는 문제 제기를 늦춘다는 지적도 현지에서 함께 나오는 편입니다.
한국인이 알아두면 좋을 것
옷차림도 같은 배려에 속합니다.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면서 발리의 힌두교와 기독교, 불교가 나란히 놓인 사회이다 보니, 사원이나 관공서를 방문할 때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는 옷을 피하는 습관은 신앙과 무관하게 공유됩니다.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습니다. 금요일 낮 시간도 비워 두는 편이 좋습니다.
카르멘의 3초가 화제가 됐던 이유는 인도네시아 팬들이 그 동작의 뜻을 곧바로 알아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짓은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전통 예절의 절반은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거절을 삼키는 화법이나 수신 확인으로 쓰이는 “Ya”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쪽에서 오해가 더 자주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