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를 오가는 택배 트럭이나 항구에 쌓인 컨테이너를 떠올리면 ‘물류’가 그려집니다. 그런데 동남아시아(ASEAN)에서 자산이 가장 큰 교통·운송 기업을 줄 세우면, 정작 상위권은 공항과 철도, 유조선이 차지합니다. 동남아 물류기업 순위를 자산 기준으로 읽으면 익숙한 그림과는 다른 지도가 펼쳐집니다.
동남아 물류기업 순위 TOP 15
자산 기준 동남아 물류기업 순위
자산을 기준으로 삼으면 배와 활주로, 선로를 많이 확보한 회사가 앞으로 나옵니다. 매출이나 이익이 아니라 장부에 잡힌 자산의 크기가 순서를 정합니다. 1위는 말레이시아의 MISC입니다. LNG선 같은 고가 선박을 대거 굴리는 에너지 해운 회사인데, 선박 자체가 거대한 자산이라 맨 앞에 섰습니다.
| 순위 | 기업 (국가) | 자산 규모 | 업종 |
|---|---|---|---|
| 1 | MISC (말레이시아) | 약 130.7억 달러 | 에너지 해운 |
| 2 | 창이공항그룹(Changi Airport Group) (싱가포르) | 약 115.4억 달러 | 공항 운영 |
| 3 | BTS 그룹 홀딩스(BTS Group Holdings) (태국) | 약 95.0억 달러 | 도시 철도 |
| 4 | 펠린도(Pelindo) (인도네시아) | 약 75.6억 달러 | 통합 항만 |
| 5 | 인저니(InJourney) (인도네시아) | 약 65.0억 달러 | 항공·관광 지주 |
| 6 | 태국공항공사(Airports of Thailand) (태국) | 약 64.7억 달러 | 공항 운영 |
| 7 | 비엣젯 항공(Vietjet Aviation) (베트남) | 약 53.0억 달러 | 저비용 항공 |
| 8 | 방콕 익스프레스웨이·메트로(Bangkok Expressway & Metro) (태국) | 약 51.0억 달러 | 고속도로·지하철 |
| 9 | 하프니아(Hafnia) (싱가포르) | 약 38.1억 달러 | 탱커 해운 |
| 10 | 베트남공항공사(Airports Corporation of Vietnam) (베트남) | 약 34.9억 달러 | 공항 운영 |
| 11 | GoTo (인도네시아) | 약 27.4억 달러 | 디지털 모빌리티 |
| 12 | RCL(Regional Container Lines) (태국) | 약 24.0억 달러 | 컨테이너 해운 |
| 13 | 웨스트포츠 홀딩스(Westports Holdings) (말레이시아) | 약 21.9억 달러 | 항만 터미널 |
| 14 | 싱가포르 포스트(Singapore Post) (싱가포르) | 약 17.8억 달러 | 우편·물류 |
| 15 | 방콕항공(Bangkok Airways) (태국) | 약 16.0억 달러 | 지역 항공 |
| 자료: 포춘 동남아시아 500(Fortune Southeast Asia 500), 2026년판·2025 회계연도 기준, 자산 기준 재정렬 | |||
이용객 수나 매장 수로 줄 세운 순위였다면 이 표는 사뭇 달랐을 겁니다. 자산이라는 자 하나가 순서를 이렇게 바꿔 놓습니다.
공항과 항만이 채운 상위권
상위권을 업종으로 갈라 보면 쏠림이 뚜렷합니다. 공항과 항공사가 다섯 곳, 해운과 항만이 다섯 곳입니다. 창이공항그룹과 태국공항공사, 베트남공항공사는 활주로와 터미널이라는 거대한 부동산을 장부에 얹었습니다. 부두와 선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로 막대한 자산입니다.
여기서 ‘물류’라는 말이 걸립니다. 흔히 물류라고 하면 택배와 창고, 화물차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자산 상위권에는 화물 배송 회사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공항·항공사와 땅과 선로를 깐 인프라 기업이 앞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순수 화물·우편 회사로는 싱가포르 포스트 정도가 겨우 이름을 올렸습니다. 무거운 인프라일수록 위로 밀려 올라간 결과입니다.
땅에서 움직이는 축은 세 곳입니다. BTS 그룹 홀딩스와 방콕 익스프레스웨이·메트로는 방콕의 도시 철도와 유료 도로를 떠받칩니다. 선로와 도로 부지가 곧 자산으로 잡힙니다. 나머지 한 곳이 인도네시아의 GoTo인데, 앞의 둘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인도네시아 3社는 합병의 산물
인도네시아는 이 순위에 세 곳을 올렸습니다. 펠린도와 인저니, 그리고 GoTo입니다. 세 곳 모두 처음부터 이 덩치는 아니었습니다. 합쳐서 커진 회사들입니다.
펠린도는 흩어져 있던 국영 항만공사 네 곳을 2021년에 하나로 묶어 만든 회사입니다.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나라에서 항만은 물류비를 좌우합니다. 정부는 통합으로 단숨에 동남아 최대급 항만 기업을 세웠습니다. 인저니도 같은 방식으로 커졌습니다. 2024년 공항 운영사 앙카사 푸라(Angkasa Pura) 두 곳을 합쳐 공항 부문을 꾸리고, 여기에 호텔과 관광 자산을 얹었습니다. 지금은 국부펀드 다난타라(Danantara) 산하 지주로,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 항공사 가루다까지 품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기업의 자산 규모는 조심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사업을 키워 커진 몸집과 여러 회사를 행정으로 합쳐 만든 몸집은 뜻이 다릅니다. 순위표의 숫자만으로는 둘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통합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는지는 앞으로 몇 해의 실적이 답할 문제입니다.
GoTo는 결이 다릅니다. 민간 플랫폼인 고젝(Gojek)과 토코피디아(Tokopedia)가 합쳐 태어났습니다. 국영 통합이 아니라 시장에서 벌어진 합병입니다. 앞의 두 곳이 항만과 공항이라는 물리적 자산으로 순위에 든 것과 달리, GoTo는 그런 하드웨어 없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자산이 작은 GoTo가 남기는 것
GoTo의 자산은 27억 달러대로, 순위에서는 11위에 그칩니다. 앞선 공항·항만 기업보다 한참 아래입니다. 그런데 GoTo가 인도네시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그만큼 가벼운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힘은 장부의 자산이 아니라 이용자와 거래액에서 나옵니다. GoTo는 차량 호출과 음식 배달, 결제 같은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수천만 명이 매일 씁니다. 부두나 활주로 같은 무거운 자산 없이도 사람들의 이동과 소비를 실어 나릅니다. 자산 순위가 이 무게를 담지 못하는 셈입니다.
이 대목이 자산 순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자산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를 재는 자입니다. ‘얼마나 큰 사업을 굴리는가’와는 다릅니다. 창고와 선박을 채운 회사가 앞에 서고, 서버와 앱으로 돌아가는 회사가 뒤로 밀리는 까닭입니다. 자산이 크다고 사업이 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숫자를 함께 봐야 할까
순위표 한 줄로 기업의 크기를 단정하면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 자산으로 줄 세운 표는 인프라의 무게를 잘 보여 줍니다. 다만 그 인프라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시장에서 얼마의 값을 받는지는 다른 표가 말해 줍니다.
그래서 세 숫자를 나란히 놓고 보는 편이 낫습니다. 자산은 소유의 크기, 매출은 사업의 크기, 시가총액은 시장의 기대입니다. 세 순위가 어긋나는 기업일수록 그 틈에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자산은 작아도 시장 가치가 높은 GoTo, 자산은 커도 통합으로 갓 커진 펠린도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