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한 대에는 배터리가 들어가고, 그 배터리에는 니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땅속에 니켈이 많이 묻혀 있느냐는 질문이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2025년 USGS(미국 지질조사국) 통계를 보면 답은 한 나라로 좁혀집니다. 바로 인도네시아입니다.
세계 최대 니켈 매장국 순위
2위 호주를 2.5배 앞서는 매장량
국가별 니켈 매장량을 늘어놓으면 1위와 2위 사이가 유독 넓게 벌어집니다. 인도네시아의 니켈 매장량은 6,200만 톤입니다. 2위 호주는 2,500만 톤, 3위 브라질은 1,600만 톤에 머뭅니다. 인도네시아 한 곳이 호주의 약 2.5배, 브라질의 약 4배를 묻어둔 셈입니다.
| 순위 | 국가 | 니켈 매장량 (2025년) |
|---|---|---|
| 1 | 인도네시아 | 6,200만 톤 |
| 2 | 호주 | 2,500만 톤 |
| 3 | 브라질 | 1,600만 톤 |
| 4 | 러시아 | 830만 톤 |
| 5 | 뉴칼레도니아 | 710만 톤 |
| 6 | 필리핀 | 480만 톤 |
| 7 | 중국 | 440만 톤 |
| 8 | 캐나다 | 220만 톤 |
| 9 | 미국 | 34만 톤 |
| 기타 | — | 910만 톤 |
순위 아래쪽으로 갈수록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9위 미국의 매장량은 34만 톤으로, 인도네시아의 1%에도 닿지 못합니다. 전 세계 니켈 자원이 특정 지역에 쏠려 있다는 신호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간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키를 인도네시아 정부가 쥐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매장량이 곧 생산량은 아냐
매장량이 많다고 시장을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캐낼 수 있어야 하고, 배터리에 쓸 등급으로 가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의 니켈은 대부분 라테라이트광입니다. 노천에서 캐내는 산화광인데, 전 세계 니켈 자원의 약 54%가 이 형태에서 나옵니다.

오랫동안 발목을 잡은 것은 가공 비용이었습니다. 라테라이트광을 배터리급 고순도 니켈로 바꾸는 데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HPAL(고압 산침출법)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계산이 달라졌습니다. 인도네시아산 저품위 니켈을 배터리용으로 돌리는 일이 경제성을 갖춘 것입니다.
생산량 수치는 더 직접적입니다. 2025년 글로벌 니켈 생산량은 전년보다 약 5%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 한 나라가 약 260만 톤을 생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 세계 공급량의 절반을 넘길 수 있는 양입니다. 인도네시아가 니켈 국제가격을 사실상 정하는 자리에 올라섰다는 의미입니다.
원광을 싸게 팔지 않기로 한 선택
인도네시아 정부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니켈 원석을 헐값에 넘기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조코 위도도(Jokowi) 정부부터 이어진 다운스트림 정책이 그 골격입니다.
가장 강한 조치는 2020년 니켈 원광 수출 전면 금지였습니다. 니켈을 사려면 인도네시아 현지에 제련소를 지으라는 압박이었습니다. 반응은 빨랐습니다.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CATL 같은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셀 공장과 양극재 공장을 세우고 있습니다. (관련글: 전기차·배터리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 필요···한-인도네시아 경제현황과 과제)
원석 대신 페로니켈과 니켈 매트, 나아가 배터리 완제품까지 자국에서 만들면 인도네시아가 챙기는 부가가치가 커집니다. 자원을 파는 나라에서 자원을 가공하는 나라로 위치를 옮기는 전략입니다.
패권이라는 말 뒤에 남는 숙제
모든 흐름이 인도네시아 쪽으로만 흐르지는 않습니다. 발목을 잡을 변수도 적지 않은 편입니다. 먼저 ESG 문제가 있습니다. 니켈을 캐는 과정에서 숲이 사라지고, 제련소에서는 탄소가 나옵니다. 친환경을 앞세우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게는 부담스러운 대목입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변수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산 니켈로 만든 배터리가 미국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가 불투명합니다.
공급 과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도네시아가 공격적으로 증설하면서 니켈 가격이 내려갔고, 호주와 뉴칼레도니아의 일부 광산은 문을 닫을 위기에 몰렸습니다. 한 나라의 질주가 다른 나라의 광산을 멈춰 세우는 구조입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인도네시아 없는 에너지 전환은 그리기 어렵습니다. 6,200만 톤의 매장량과 연 260만 톤의 생산 능력은 한동안 흔들리기 어려운 기반입니다. 한국의 배터리·자동차 기업에게 남는 질문은 조금 다른 쪽에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을 어디까지 깊게 끌고 갈지, ESG 규제와 미국 통상 정책이라는 두 변수를 어떻게 나눠 담을지가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