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10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피자 브랜드를 한 줄로 세워 보면, 익숙한 이름과 낯선 이름이 절반씩 섞여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통계를 다루는 미디어 Seasia Stats에 따르면 피자헛 같은 글로벌 체인이 네 나라를 잡고 있고, 태국 토종 브랜드 하나가 인접 세 나라를 묶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별 가장 인기 있는 피자 체인
피자헛이 무슬림 국가에서 1위를 지키는 방식
피자헛은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미얀마, 싱가포르 네 나라에서 1위입니다. 묶어 놓고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종교도 소득 수준도 제각각인데 한 브랜드가 살아남았습니다. 비결은 표준 메뉴를 그대로 들고 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 국가 | 1위 피자 브랜드 |
|---|---|
| 브루나이 | 피자헛 |
| 캄보디아 | 더 피자 컴퍼니 |
| 인도네시아 | 피자헛 |
| 라오스 | 더 피자 컴퍼니 |
| 말레이시아 | 도미노피자 |
| 미얀마 | 피자헛 |
| 필리핀 | 셰키스 피자 |
| 싱가포르 | 피자헛 |
| 태국 | 더 피자 컴퍼니 |
| 베트남 | 피자 포피스 |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고, 브루나이는 이슬람교가 국교입니다. 두 나라에서 할랄 인증이 없는 음식은 애초에 선택지에 오르지 못합니다. 피자헛은 현지 법인으로 할랄 공급망을 일찍 깔았고, 삼발(Sambal) 같은 매운 닭고기 토핑을 따로 개발했습니다. 종교와 입맛이라는 두 장벽을 동시에 넘은 셈입니다.
같은 브랜드가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는 다른 얼굴을 보입니다. 도시가 성숙한 싱가포르에서는 배달 속도와 모바일 앱 편의성을 앞세웁니다. 반대로 신흥 시장인 미얀마에서는 특별한 날 가족이 함께 찾는 고급 레스토랑 쪽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같은 간판, 다른 전략입니다.

태국 브랜드가 국경을 넘은 이유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차이나반도 가운데를 차지한 1위는 미국 대형 체인이 아닙니다. 태국 토종 브랜드 더 피자 컴퍼니(The Pizza Company)입니다.
출발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브랜드를 만든 마이너 인터내셔널(Minor International)은 원래 태국에서 피자헛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던 파트너였습니다. 2001년 계약 분쟁 끝에 갈라선 뒤, 자체 브랜드로 독립했습니다. 경쟁자 밑에서 익힌 운영 노하우를 그대로 들고 나온 경우입니다.
무기는 현지화였습니다. 똠얌(Tom Yum) 피자, 그린 커리 피자처럼 태국 소스와 해산물을 아낌없이 올린 메뉴를 전면에 세웠습니다. 치즈 양을 늘리고 크러스트 옵션을 넓히면서 단숨에 피자헛을 제쳤습니다. 태국에서 쌓은 체력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식문화가 비슷한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함께 들어가, 그 나라 소비자에게 가장 익숙한 피자로 안착했습니다. 브랜드 하나가 권역 전체의 입맛 기준이 된 셈입니다.
가성비와 가족 식탁이 갈라놓은 두 시장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갈라지는 지점을 잘 보여줍니다. 두 나라 모두 글로벌 체인이 1위지만, 이긴 방식이 다릅니다.
말레이시아 소비자는 스마트폰 활용도가 높고 가격에 민감합니다. 도미노피자는 온라인 주문 플랫폼과 빠른 배달, ‘1+1’ 프로모션을 앞세워 일상 식탁을 파고들었습니다. 특별한 날의 외식이 아니라 평일 저녁 한 끼로 들어간 전략입니다.
필리핀은 결이 다릅니다. 미국 식문화가 오래 뿌리내린 곳이라, 1950년대 미국에서 출발한 셰키스 피자(Shakey’s Pizza)가 본토보다 여기서 더 크게 자랐습니다. 대가족 문화에 맞춰 피자와 프라이드치킨, 모조 감자(Mojos), 파스타를 한 상에 올리는 패밀리 플래터를 내놓았습니다. 피자 가게라기보다 가족 외식 공간에 가깝습니다.
베트남이 글로벌 체인 대신 수제 피자를 고른 까닭
베트남만 다른 길을 갔습니다. 다른 아홉 나라가 대형 프랜차이즈나 대중 브랜드를 고르는 동안, 베트남 소비자의 선택은 캐주얼 파인다이닝에 가까운 피자 포피스(Pizza 4P’s)였습니다.
일본인 부부가 호치민에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인스턴트식 패스트푸드 피자와는 결이 다릅니다. 달랏 고산지대에서 유기농 채소를 직접 기르고, 자체 공장에서 부라타와 모짜렐라 치즈를 매일 만듭니다. 매장은 공간 디자이너와 협업해 건축물처럼 꾸몄습니다. 음식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겠다는 신호입니다.
젊고 소득이 늘어난 베트남의 IT·사무직 계층은 한 끼를 ‘경험’으로 소비합니다. 후발 주자라도 웰빙과 친환경, 수제라는 가치를 제대로 들고 나오면 거대 체인을 제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베트남의 입맛이 얼마나 빠르게 고급화되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동남아 피자 지도를 한 장으로 펼쳐 놓으면, 피자보다 그 나라가 더 잘 보입니다. 무슬림 인구, 인접국 식문화, 소득 곡선, 외식을 대하는 태도가 브랜드 순위에 그대로 찍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쪽으로 옮겨 갑니다. 한국 외식 브랜드가 이 지도에 이름을 올리려면, 표준 메뉴를 들고 갈까요, 아니면 현지 입맛부터 다시 설계할까요. 피자헛과 더 피자 컴퍼니가 이미 답의 절반을 보여 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