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를 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섬이 1만 7,000개가 넘고, 민족(Suku)도 300개를 웃돕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나라가 어떻게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지 들여다보면 ‘므란타우(Merantau)’라는 말과 만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5대 이주 부족
므란타우는 학업이나 일자리,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Kampung Halaman)을 떠나 낯선 도시나 해외로 나가 스스로 자립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이 말은 단순한 이사와 다른 무게를 지닙니다.
므란타우, 떠남 자체가 하나의 통과의례
원래 이 단어는 수마트라섬 미낭카바우(Minangkabau) 부족의 말에서 나왔습니다. 처음 뜻은 ‘강의 하구나 외지로 나가다’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의미가 훨씬 넓어졌습니다.
고향의 안락함을 벗어나 역경을 겪고, 그 과정에서 사람으로 성장하고, 끝내 성공해 가문의 이름을 높이는 여정 전체를 므란타우라 부릅니다. 떠나는 일이 곧 어른이 되는 절차인 셈입니다. 그래서 청년이 고향을 떠날 때 가족은 슬퍼하기보다 응원합니다.
다섯 부족은 타지를 제각기 다르게 살아
| 부족 | 본거지 | 주로 진출하는 분야 |
|---|---|---|
| 바탁 | 수마트라 북부 토바 호수 | 법조계, 교육, 공무원, 금융, 예술 |
| 미낭 | 수마트라 서부 | 요식업, 섬유 무역, 도소매 |
| 자바 | 자바섬 | 행정, 서비스업, 농업, 제조업 |
| 부기스 | 술라웨시 남부 | 해운, 수산, 농장, 무역 |
| 마두라 | 마두라섬 | 고철 수거·가공, 요리 판매, 소매 |
다섯 부족이 향하는 목적지는 비슷합니다. 자리를 잡고, 가문을 일으키는 것.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길은 부족마다 결이 다릅니다.
바탁 부족은 수마트라 북부 토바 호수 일대가 본거지입니다. 궂은일을 가리지 않는 우직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겉모습은 거칠고 독립적이지만, 타지에서 만난 동향 사람끼리 서로 끌어주는 결속력이 끈끈합니다. “Satahi Saoloan”, 곧 한마음으로 움직인다는 격언이 그 바탕입니다. 혼자 강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공동체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미낭 부족의 사정은 좀 더 구조적입니다. 이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모계 사회(Matrilineal)입니다. 가문의 토지와 유산이 딸에게 상속되다 보니, 젊은 남성은 자기 힘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외지로 나가야 했습니다. 므란타우가 선택이 아니라 거의 의무였던 셈입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보이는 나시 파당(Nasi Padang) 식당이 그 결과물입니다.
자바 부족은 인도네시아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합니다. 숫자가 큰 만큼 퍼져 있는 범위도 넓습니다. 이들은 타지에서 갈등을 만들기보다 묵묵히 제 몫을 하며 주변과 섞이는 쪽을 택합니다. 부기스 부족은 다릅니다. 전통 돛배 ‘피니시(Pinisi)’를 몰고 동남아 바다를 누비던 해양 민족의 후손답게 대담합니다. 마두라 부족은 척박한 고향 섬을 일찍 떠나, 고철 수거나 사테 마두라(Sate Madura) 장사처럼 밑바닥에서 시작해 맨손으로 일어섭니다.

떠난 사람이 고향을 바꿔
타지에서 자리를 잡은 페란타우(Perantau)가 고향으로 보내는 송금(Remittance)은 시골의 학교, 집, 작은 가게를 떠받치는 돈줄이 됩니다. 도시로 떠난 사람이 정작 고향 경제를 살리는 구조입니다.
여러 부족이 한 도시에서 섞여 살면서 서로의 문화를 익히게 된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국가 표어인 ‘다양성 속의 통합(Bhinneka Tunggal Ika)’은 이런 일상에서 실제로 작동합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떠난 사람일수록 뿌리를 더 또렷이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고향을 바라보기 때문에 오히려 정체성을 또렷하게 붙듭니다. “Merantau bukan melupakan asal, tapi membawa nama baik kampung halaman!” 이주는 고향을 잊는 일이 아니라 고향의 이름을 빛내는 일이라는 말이 이 정서를 압축합니다.
바탁의 끈기, 미낭의 지혜, 자바의 조화, 부기스의 용맹, 마두라의 강인함은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