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 영웅’ 검사 집에서 나온 금괴 74kg···인도네시아의 심각한 부패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의 고급 주택가 센툴(Sentul). 2026년 7월 초, 이 동네의 한 저택에서 경찰이 여덟 시간 가까이 압수수색을 벌였습니다. 방 하나의 벽 뒤에 금고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열쇠공을 부르고 그라인더까지 동원한 끝에 문이 열렸습니다.

집주인은 대검찰청 특별범죄담당 차장검사(Jampidsus)를 지낸 페브리 아드리안샤(Febrie Adriansyah)였습니다. 조 단위 국영기업 비리 수사를 직접 지휘하며 반부패의 상징으로 불리던 인물입니다.

‘대표 반부패 검사’의 몰락

금고 안에는 여행용 캐리어 일곱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1kg짜리 금괴와 다국적 외화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경찰은 압수한 현금을 루피아로 환산해 총액을 공개했습니다.

품목수량·금액
금괴74개(개당 약 1kg, 합계 74kg)
미국 달러4,767,300 USD
싱가포르 달러14,803,800 SGD
루피아 현금1억 루피아
현금 환산 총액약 4,760억 루피아
자료: 폴다 메트로자야(Polda Metro Jaya) 발표, 2026년 7월

센툴 자택 금고 한 곳에서만 금괴 74kg과 약 4,760억 루피아 상당의 현금이 나왔고, 자카르타 일대 13개소를 합친 압수 규모는 5,430억 루피아로 보도됐습니다.

페브리는 7월 11일 차장검사직에서 물러났고, 경찰 부패척결단(Kortas Tipidkor)은 그 직후 그를 피의자로 입건했습니다. 지인인 돈 리토(Don Ritto)도 자금세탁 혐의로 함께 입건됐습니다.

집은 내 소유가 맞지만, 그 안에서 나온 금괴와 현금의 주인은 따로 있다.

페브리 검사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경찰은 금괴의 진위와 순도를 국영 전당포 기업 프가다이안(PT Pegadaian)에 맡겼고, 외화 지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미국·싱가포르 대사관, 중앙은행에 검증을 의뢰했습니다.

페브리 검사 자택에서 압수된 금괴와 현금
페브리 검사 자택에서 압수된 금괴와 현금

지휘하던 사건이 혐의 목록으로

경찰이 적용한 혐의는 세 갈래입니다. 석탄 조달 비리, 아사브리(PT Asabri), 끄라까따우 스틸(PT Krakatau Steel). 세 사건 모두 그가 차장검사로서 처리 권한을 쥐고 있던 영역입니다.

그는 지와스라야(Jiwasraya) 비리, BTS 통신망 비리 같은 대형 수사를 지휘하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수사 지휘 권한이 커질수록, 그 수사를 무마해 달라는 쪽이 부를 수 있는 값도 함께 커집니다. 실적이 곧 협상력이 됩니다. 혐의 목록과 그가 지휘하던 사건 목록이 겹친다는 점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국영기업(BUMN, Badan Usaha Milik Negara)이 늘 중심에 놓이는 이유도 같은 자리에서 설명됩니다. 인도네시아 국영기업은 보험, 에너지, 철강, 건설 같은 기간산업을 사실상 독점합니다. 예산이 크고 조달 단계가 많습니다. 군인·경찰 연금을 굴리던 아사브리는 불법 주식 투자로 국고에 막대한 손실을 안겼고, 끄라까따우 스틸은 원자재 조달 단계에서 리베이트 관행이 굳어졌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정전은 기술 사고가 아니었다

세 혐의 가운데 석탄 사건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피해가 국고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2018년부터 2026년까지 국영 전력회사(PLN) 산하 화력발전소에 공급된 석탄에서 세 가지 수법을 찾아냈습니다. 품질 서류 조작, 수량 조작, 그리고 실제 공급과 맞지 않는 대금 지급입니다.

저품질 석탄은 빨리 탑니다. 오래 버텨야 할 연료가 금세 바닥났고, 발전소가 멈췄습니다. 칼리만탄 일부와 중부·동부 자바, 자보데타벡 일대의 순환 정전이 여기에 얽혀 있다고 경찰은 봅니다. 국가·경제 손실 추정치는 약 5조 루피아입니다.

다만 2026년 5월 수마트라를 덮친 대규모 정전은 잠비 지역 송전선 장애가 원인이며 석탄 비리와는 무관하다고 경찰이 명시했습니다. 모든 정전이 부패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이라면, 전력 안정성 문제를 설비나 인프라 문제로만 계산해서는 위험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정 시스템의 한계

2002년 출범한 부패척결위원회(KPK)는 장관과 대기업 총수를 성역 없이 구속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2019년 법 개정이 흐름을 바꿨습니다. 감청과 압수수색에 감독위원회 승인이 필요해지면서 수사 속도가 크게 떨어졌고, 내부 인사의 비리 의혹까지 겹쳐 위상이 내려앉았습니다.

빈자리를 경찰이 채웠습니다. 2024년 말 부패척결단으로 격상된 조직이 이번 압수수색을 주도했습니다. 그렇다면 경찰이 견제 장치일까요. 같은 기간 검찰은 무상 급식 프로그램(MBG) 비리를 수사해 7명을 입건했는데, 그중에는 전 국가영양청(BGN) 청장 다단 힌다야나(Dadan Hindayana)와 함께 현직 경찰 준장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경찰이 검찰 차장검사를 입건하는 동안, 검찰은 경찰 장성을 입건한 셈입니다. 최고위직이 법정에 서는 순간은 제도가 작동할 때가 아니라 사정 기구가 서로를 겨눌 때 찾아옵니다. 견제가 규칙이 아니라 경쟁으로 굴러가는 구조입니다. 페브리 사건은 지금 대검찰청으로 이송돼 KPK의 감독과 국회 제3위원회의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자기 조직의 전 수뇌부를 자기 손으로 기소하는 셈이라, 신뢰를 얻으려면 절차가 훨씬 투명해야 합니다.

추락하는 부패인식지수

연도점수(100점 만점)순위
2019년40점(역대 최고)85위
2024년37점99위
2025년34점109위
자료: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부패인식지수, 2025년 지수는 2026년 2월 발표

인도네시아는 2025년 부패인식지수에서 34점을 받아 182개국 가운데 109위에 올랐습니다. 이 지수는 실제 부패량이 아니라 전문가와 기업인의 ‘인식’을 재는 도구입니다. 부패가 늘어난 것인지, 드러나는 부패가 늘어난 것인지를 이 숫자 하나로는 가릴 수 없습니다. (관련글: 동남아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는 어디일까?···아세안 부패 순위)

2019년 40점이 역대 최고점이었고, 이후로는 한 번도 그 선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대통령이 무관용 원칙을 내걸었지만, 정작 대표 공약인 무상 급식 사업에서 최고 책임자가 입건됐습니다. 인도네시아 부패를 국가 리스크로 계산하는 외국 투자자에게 이 조합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