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를 떠올리면 마른 체형이 먼저 그려집니다. 쌀국수, 생채소, 무더운 날씨. 그런데 아세안 안에는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비만인 나라가 있습니다. 브루나이(Brunei)입니다. 동남아시아 비만율 순위표는 가장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부유한 나라를 맨 위에 올려놓습니다.
동남아시아 비만율 1위 국가와 아세안 11개국 순위
격차도 상당합니다. 1위와 최하위 사이는 서른 배 가까이 벌어집니다. 같은 지역, 비슷한 기후, 겹치는 식재료를 쓰는 나라들 사이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다만 이 순위표를 읽는 데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숫자를 재는 자와 잰 시점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세안 비만율 1위는 가장 부유한 나라
세계비만연맹(World Obesity Federation)이 운영하는 글로벌 비만 관측소(Global Obesity Observatory)는 각국의 실측 조사 결과를 모아 성인 비만율을 게시합니다. 기준은 체질량지수 30 이상입니다. 아세안 11개국을 이 표에 올려놓으면 순서가 이렇게 나옵니다.
| 국가 | 성인 비만율(BMI 30 이상) | 조사 연도 | 조사 연령 |
|---|---|---|---|
| 브루나이 | 32.4% | 2022~2023년 | 18~69세 |
| 말레이시아 | 23.1% | 2024년 | 18세 이상 |
| 태국 | 15.6% | 2024~2025년 | 15세 이상 |
| 싱가포르 | 12.7% | 2023~2024년 | 18~74세 |
| 필리핀 | 10.0% | 2021~2022년 | 20~59세 |
| 인도네시아 | 5.6% | 2013년 | 19세 이상 |
| 라오스 | 5.6% | 2013년 | 18~64세 |
| 미얀마 | 4.7% | 2017~2018년 | 15~49세 |
| 캄보디아 | 4.3% | 2023년 | 18~69세 |
| 베트남 | 2.1% | 2021년 | 18~69세 |
| 동티모르 | 1.1% | 2016년 | 15~49세 |
| 자료: 세계비만연맹 글로벌 비만 관측소, 국가별 최신 실측 조사 기준 | |||
브루나이는 아세안에서 유일하게 성인 비만율 30%를 넘겼고, 2위 말레이시아와도 9%포인트 넘게 차이가 납니다. 상위 네 자리를 고소득·중상위소득 국가가 차지한 점도 눈에 띕니다. 소득과 비만이 함께 올라간 모양새입니다.
소득이 아니라 이동 방식이 몸을 바꿔
브루나이는 석유와 천연가스로 아세안 최상위 소득 구간에 올라선 나라입니다. 차량 보급률이 높고,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짧은 거리도 걷지 않는 생활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루에 쓰는 근육이 줄어든 셈입니다.
말레이시아도 경로가 비슷합니다. 도시화가 빨라지면서 앉아서 일하는 직군이 늘었습니다. 식탁도 거들었습니다. 코코넛 밀크와 기름, 설탕을 넉넉히 쓰는 나시 르막(nasi lemak) 같은 음식이 주식 자리를 지키고, 연유를 듬뿍 넣은 테 타릭(teh tarik)이 하루 두세 잔씩 소비됩니다. 설탕과 식용유에 붙은 정부 보조금은 고칼로리 식단의 가격을 오랫동안 낮춰 왔습니다. 비만을 만든 것은 부유함 자체가 아니라 부유함이 바꿔 놓은 이동 방식과 가격표입니다.

베트남의 최저 기록에는 조사 연도라는 함정
2021년 조사에서 베트남의 성인 비만율은 2.1%로 나왔습니다. 경제가 빠르게 커지는 나라가 이 수준을 지켰다는 점에서 보건학계의 관심을 받아 온 숫자입니다. 식단이 한몫합니다. 포(Phở)나 고이 꾸온처럼 끓이고 찌는 조리가 중심이고, 생채소와 허브가 접시마다 따라옵니다. 치즈와 버터의 소비량이 적어 같은 양을 먹어도 열량 밀도가 낮은 편입니다. 새벽 공원의 단체 운동, 오토바이와 자전거 위주의 이동도 하루 활동량을 떠받칩니다.
그런데 표의 맨 아래는 베트남이 아닙니다. 동티모르가 1.1%로 더 낮습니다. 이 수치는 2016년에 15~49세만 대상으로 잰 값입니다. 체중이 가장 잘 늘어나는 50대 이상이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미얀마도 같은 사정입니다.
인도네시아와 라오스의 5.6%는 2013년 조사입니다. 십수 년 전 숫자입니다. 그 사이 두 나라의 도시화와 배달 음식 시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떠올리면, 이 값이 오늘의 상태를 보여 준다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순위표 아래쪽의 낮은 숫자는 낮은 비만율이 아니라 오래된 조사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5.6%와 23.4%는 같은 나라 숫자
인도네시아 보건부의 기초보건조사(Riskesdas)는 2018년 성인 비만율을 21.8%로 발표했습니다. 2023년 인도네시아 보건조사에서는 23.4%까지 올라갔습니다. 국제 표의 5.6%와 네 배 넘게 벌어집니다. 두 숫자 모두 틀리지 않았습니다. 자가 다릅니다. 인도네시아는 체질량지수 27 이상을 비만으로 세고, 국제 표는 30 이상만 셉니다.
기준선을 낮춰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권고는 과체중을 23, 비만을 25, 고도 비만을 27.5부터 잡습니다. 같은 체질량지수에서도 내장 지방이 더 많이 쌓이고 당뇨·고혈압이 더 이른 체중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권고가 국제 분류를 대체한 공식 기준으로 채택된 것은 아닙니다.
기준을 25로 옮겨 다시 세어 봅니다. 같은 표의 과체중과 비만을 합치면 인도네시아는 25.8%, 싱가포르는 40.1%가 됩니다. 안전지대처럼 보이던 자리가 사라집니다. 한국도 같은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 국제 표에서 한국의 성인 비만율은 7.28%(2022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국내 통계는 체질량지수 25 이상을 비만으로 잡아 성인 세 명 중 한 명대를 기록합니다. 인도네시아를 낮게 본 눈으로는 한국도 낮게 보입니다.
설탕세 지도와 비만 지도는 겹치지 않아
아세안의 설탕세 도입 순서를 보면 이상한 그림이 나옵니다. 브루나이는 2017년에 당류 음료 세금을 도입했습니다. 필리핀도 같은 해 입법했고, 태국은 2017년 9월부터 당 함량에 따라 세율을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2019년 4월에 시행했습니다. 반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설탕세 도입 시도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순위표와 겹쳐 보면 순서가 뒤집혀 있습니다. 설탕세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가 비만율 1위이고, 세금을 걷지 못한 나라들이 최하위권에 있습니다. 세금이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책이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문제가 심각한 나라부터 정책을 꺼내 들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설탕세의 존재는 예방의 신호가 아니라 이미 늦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2022년 12월 30일부터 뉴트리그레이드(Nutri-Grade)를 의무화해 음료에 당류·포화지방 기준으로 A부터 D까지 등급을 붙였고, D등급은 광고 자체를 막았습니다. 세금이 가격을 건드린다면, 등급표는 선택의 순간을 건드립니다. 걷기 좋은 도시를 다시 설계하는 일도 같은 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