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아세안 정책의 한계

인도네시아에서 지하철을 타면 일본이 떠오르고, 고속철에 오르면 중국이 스쳐 갑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쯤 있을까요.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대(對) 아세안(ASEAN) ‘실용주의’는 바로 이 자리를 찾는 데서 출발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거대 자본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대신, 한국이 잘하는 좁은 영역을 파고드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 선택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대가가 따릅니다.

실용주의가 ‘틈새’로 좁아진 사정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접었던 신남방정책을 2025년 다시 꺼내 들면서, 취지는 잇되 그릇은 실용주의로 바꿨습니다. 방향은 공급망·경제 안보와 디지털·치안 협력으로 모였습니다. 왜 하필 이 좁은 영역이었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체급이 다릅니다. 중국과 일본은 고속철·항만·발전소에 수십억 달러 단위를 쏟아붓지만, 한국의 절대 재원은 그 규모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대규모 토목 없이도 상대국 행정과 시스템의 중추를 파고드는 소프트 협력입니다. 약해서 물러선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판을 고른 계산된 선택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판을 좁힌 만큼, 수십억 달러짜리 교통망을 제안하는 두 나라 옆에서 한국이 조연으로 밀릴 여지도 함께 커진다는 데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아세안 정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이재명 정부의 아세안 정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가장 눈에 띈 성과가 현지에선 보이지 않아

이 전략이 실제로 통한 사례가 있습니다. 동남아 스캠 범죄 공조입니다. 2025년 10월 한·캄보디아 정상회담 합의로 그해 12월 캄보디아 경찰청 안에 ‘코리아전담반’이 꾸려졌고, 한국 경찰 7명과 캄보디아 경찰 12명이 한 사무실에서 일했습니다. 2026년 1월에는 피해액 486억 원 규모 조직원 73명을 전세기로 한꺼번에 송환했습니다. 이후 한국인 대상 피해 신고는 전년보다 80% 넘게 줄었습니다. 성과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이 작전은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그 화면을 지켜본 관객은 대부분 한국 국민이었습니다. 캄보디아의 평범한 시민이 “한국 덕분에 내 일상이 편해졌다”고 느낄 창구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흔히 지적되는 ‘보이지 않는 기여’라는 진단은 절반만 맞습니다. 한국의 성과는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방향이 현지가 아니라 자국을 향해 있습니다.

국가대표 협력 방식대표 사례
일본대형 교통 인프라 ODA자카르타 MRT, 츠바사 대교
중국일대일로 메가 인프라자카르타-반둥 고속철(Whoosh), 라오스-중국 철도
한국디지털·치안 등 소프트 협력코리아전담반(스캠 공조), 디지털 행정 협력
자료: 각국 정부 발표·언론 보도 종합, 2025~2026년

세 나라의 접근은 규모보다 ‘누가 매일 체감하느냐’에서 갈립니다. 일본과 중국은 사람들이 날마다 밟고 건너는 물리적 구조물을 남겼고, 한국은 눈에 닿지 않는 시스템과 제도에 손을 댔습니다. 현지 대중의 호감이 쌓이는 자리는 대개 전자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리셋되는 구조를 넘어서려면

한계는 가시성 하나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속성도 약한 고리입니다. 한국의 대 아세안 기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신남방정책은 만들어졌다가 접혔고, 다시 부활했습니다. 상대국 입장에선 몇 년 뒤에도 유효할 약속인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기술 표준에 기댄 전략이라는 점도 부담입니다. 디지털 행정이나 에너지 전환 같은 협력은 미국과 중국의 표준 경쟁에 깊이 얽혀 있습니다. 동남아 국가가 어느 한쪽 생태계를 고르는 순간, 한국이 공들여 깔아 둔 틈새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남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자국민 보호라는 손에 잡히는 성과를 냈지만, 그 성취가 아세안 안에서의 영향력으로 옮겨 붙는 속도는 더딘 편입니다.

눈에 보이는 다리 하나와, 국민 73명을 태우고 돌아온 전세기 한 대. 아세안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새기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요. 두 장면을 지켜본 관객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아챌 때, ‘실용’이 결국 누구를 위한 실용인지 다시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