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자카르타의 스포티파이 차트 100위 안에는 케이팝 곡이 여덟 곡 넘게 걸려 있었습니다. 2026년 5월, 같은 차트에서 그 자리는 거의 비었습니다. 숫자가 먼저 말합니다. 빈칸을 채운 건 미국 팝이 아니라 현지 노래였습니다. 동남아 케이팝 이야기에서, 요 몇 해의 변화는 이 대비 하나로 요약됩니다.
동남아 걸그룹이 뜬다
2023년만 해도 분위기는 반대였습니다. 판이 바뀌었습니다. 팬데믹으로 멈췄던 콘서트가 다시 열리고, 블랙핑크는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을 이틀간 채우며 약 7만 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열기가 더 거세질 거라는 기대와 달리 3년 뒤 차트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관련글: 인도네시아의 케이팝 열풍···인도네시아는 왜 K-POP에 열광할까?)
차트에서 케이팝이 빠지고 현지 음악이 차지
한 데이터 분석가가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다섯 나라의 스포티파이 일간 Top 50을 2023년부터 2026년 5월까지 추적했습니다. 예외가 드물었습니다. 방향은 한쪽으로 뚜렷했습니다. 현지 음악 비중이 오르고, 케이팝과 서구 팝 비중이 함께 내려갔습니다.
| 국가 | 현지 음악 점유율 (2023) | 현지 음악 점유율 (2026) |
|---|---|---|
| 인도네시아 | 60% | 78% |
| 태국 | 65% | 78% |
| 필리핀 | 44% | 63% |
| 자료: 5개국 스포티파이 일간 Top 50 차트 분석(데이터 분석가 @tsurezure_lab), 2023~2026년 5월 / 언론 재인용 | ||
같은 기간 케이팝 비중은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태국에서는 27%에서 11%로, 인도네시아에서는 5%에서 1% 남짓으로 내려갔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18%에서 13%로 빠졌습니다.
‘시들었다’는 한 단어로는 부족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본 겁니다. 차트는 좁은 창입니다. 이 수치는 스포티파이 차트의 ‘구성 비율’이지, 총 소비량이나 팬덤의 크기가 아닙니다. 인기곡 목록에서 각 장르가 차지한 자리일 뿐입니다. 자국어 노래가 캐주얼 청취에서 유리한 시장일수록, 케이팝의 차트 지분은 원래도 얇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의 5%가 그 예입니다.
케이팝이 동남아에서 쌓아 온 힘은 캐주얼 스트리밍보다 팬덤의 깊이에 있었습니다. 결이 다른 지표입니다. 앨범 판매, 대형 콘서트, 굿즈, 커버댄스 커뮤니티 같은 것들 말입니다. 7만 석을 이틀 채운 블랙핑크 공연이 그 깊이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2025년 케이팝의 글로벌 매출과 수출은 오히려 최고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한국 내수 소비는 줄었지만, 세계 무대의 규모는 커졌습니다. (관련글: 동남아시아 출신 K-POP 아이돌 그룹 멤버 누가 있을까?)
‘현지 팝의 부상’이라는 말도 뜯어볼 구석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순수 자국어 곡도 있고, 영어로 부르거나 케이팝 제작 방식을 그대로 빌려 온 곡도 섞여 있습니다. 무엇을 ‘현지’로 셀지에 따라 그림이 또 달라집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동남아 걸그룹들
차트 상단을 채우는 이름도 바뀌고 있습니다. 무대가 커졌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88rising이 만든 걸그룹 노나(No Na)가 아이돌 포맷에 현지 감성을 담아 올라왔습니다. 필리핀 BINI는 2026년 코첼라 무대에 오른 첫 필리핀 그룹이 되었고, 태국 4EVE는 방콕 임팩트 아레나 1만 2,000석을 매진시켰습니다. 말레이시아 DOLLA의 ‘BAD’는 자국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케이팝 커버댄스 영상을 올리던 지역에서, 자기 이름을 건 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 뒤에는 각자의 산업이 있습니다. 태국의 워크포인트, 필리핀의 ABS-CBN, 말레이시아의 유니버설, 미국 기반의 88rising이 그 뒤를 받칩니다. 오디션과 서바이벌로 연습생을 뽑고, 스트리밍·틱톡으로 곡을 돌리는 구조가 나라마다 자리를 잡았습니다. 케이팝이 20여 년에 걸쳐 다듬은 방식과 닮았습니다. 배운 쪽이 판을 넓혔습니다.
케이팝이 열어 둔 시장, 이제 방향이 갈려
현지 팝을 밀어 올린 조건은 낯설지 않습니다. 조건이 같습니다. 젊은 인구, 두꺼워진 중산층, 높은 스마트폰·스트리밍 보급률. 10여 년 전 동남아가 케이팝에 빠져든 바로 그 환경입니다. 달라진 건 그 환경이 이제 자국어 음악에도 똑같이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스트리밍은 현지 가수의 진입 장벽을 낮췄고, 틱톡은 자국어 후렴을 순식간에 퍼뜨립니다. (관련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도팝 뮤지션 TOP 10)
한국 독자에게 이 변화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동남아는 오랫동안 케이팝 산업의 든든한 수익 기반이었습니다. 그 기반의 청취 습관이 자국어 쪽으로 기울면, 케이팝의 다음 전략도 다시 짜야 합니다. 그러면 곧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다음은 동남아 웨이브다.’ 과연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