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인기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맥심이 수출 못 하는 이유?!

동남아 편의점 커피 진열대는 나라를 건널 때마다 얼굴이 바뀝니다. 필리핀과 태국에서는 노란 네스카페(Nescafé) 봉지가 벽을 채우고, 베트남에서는 진한 G7이, 인도네시아에서는 붉은 카팔 아피(Kapal Api)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동남아 인스턴트 커피 시장은 하나의 시장이 아니라, 나라마다 다른 브랜드가 안방을 지키는 여러 개의 시장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최근 몇 해 사이 한국식 믹스커피가 끼어들었습니다. 한류를 타고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 1위 브랜드인 맥심(Maxim)은 이 시장에 공식적으로 발을 들이지 못합니다. 수요는 뜨거운데 수출길은 막혀 있습니다.

네스카페는 넓게 퍼졌지만 나라마다 안방 주인은 달라

스위스 식품 기업 네슬레(Nestlé)의 네스카페는 자본력과 유통망으로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1위를 지킵니다. 필리핀, 태국, 브루나이, 캄보디아가 대표적입니다. 인스턴트 커피 소비가 많은 태국과 필리핀에서는 현지 입맛에 맞춘 ‘3-in-1′(커피·설탕·프림) 제품을 촘촘하게 깔아 안방을 잡았습니다. 달고 부드러운 맛이 통했습니다.

내수 제조 기반이 얇은 나라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브루나이나 캄보디아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시장에서 네스카페는 ‘믿고 마시는 매일의 커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품질이 고르다는 점이 무기였습니다. 다만 이 지도는 나라를 건너면 곧바로 뒤집힙니다.

로컬 브랜드는 ‘자국 커피 맛’으로 방어

글로벌 공세 앞에서도 로컬 브랜드는 쉽게 밀리지 않습니다. 무기는 ‘그 나라의 커피 맛’입니다. 어느 브랜드가 어느 시장을 쥐고 있는지부터 정리하면 지형이 선명해집니다.

국가대표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유형
필리핀·태국·브루나이·캄보디아네스카페글로벌
베트남G7(쭝웬(Trung Nguyen))로컬
인도네시아카팔 아피로컬
말레이시아올드타운 화이트 커피(OldTown White Coffee)로컬
싱가포르골드 킬리(Gold Kili)로컬
미얀마슈퍼 커피 믹스(Super Coffee Mix)로컬
라오스다오 커피(Dao Coffee)로컬
자료: 첨부 인포그래픽(Southeast Asia Instant Coffee Brand Preference Database) 정리

동남아 인스턴트 커피 지도에서 글로벌 브랜드가 안방을 잡은 나라는 손에 꼽습니다. 나머지 시장은 대부분 자국 로컬 브랜드의 몫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쭝웬의 G7이 독보적입니다.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자 로부스타(Robusta) 원두의 최대 산지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진하고 구수한 로부스타 특유의 맛을 특허 로스팅으로 끌어올려, 인스턴트인데도 전통 드립 커피 카페 핀(cà phê phin)의 묵직한 풍미를 냅니다. 베트남인에게 G7은 음료 이상의 자존심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27년 수라바야(Surabaya)에서 시작한 커피 사업에 뿌리를 둔 카팔 아피가 시장을 쥐고 있습니다. 곱게 간 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 가라앉혀 마시는 전통 방식, 코피 튜브룩(Kopi Tubruk)을 저렴한 인스턴트로 옮겨 국민 브랜드가 됐습니다. 남녀노소가 매일 마시는 이름이 됐습니다.

커피
동남아는 로컬 인스턴트 커피가 인기다

말레이시아의 올드타운 화이트 커피는 이포(Ipoh) 지역의 ‘화이트 커피’를 대표합니다. 생두를 볶을 때 팜유 마가린을 넣어 쓴맛을 줄이고 캐러멜 같은 단맛을 살렸습니다. 현지 카페 문화인 코피티암(kopitiam)의 맛을 집에서 재현한 셈입니다. 싱가포르의 골드 킬리, 미얀마의 슈퍼 커피 믹스, 라오스의 다오 커피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를 지킵니다. 특히 다오 커피는 볼라벤 고원(Bolaven Plateau)의 화산재 토양에서 기른 아라비카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노립니다.

K-커피는 뜨거운데 맥심은 수출길 막혀

최근 동남아 젊은 층 사이에서 한국식 믹스커피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현지 대형 마트와 쇼피(Shopee), 라자다(Lazada) 같은 이커머스에서 한국 믹스커피를 상자째 사는 소비자를 어렵지 않게 봅니다. 한류 드라마에 노란 믹스커피 스틱을 뜯어 종이컵에 타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면서, ‘한국식 오피스 감성’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맛과 포장도 한몫했습니다. 현지 믹스커피가 단맛·쓴맛이 강한 편이라면, 한국 제품은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으로 디저트처럼 즐기기 좋습니다. 스틱 끝을 잘라 설탕량을 조절하는 이지컷 포장도 인상을 남겼습니다.

문제는 정작 한국 1위 브랜드가 이 수요를 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동서식품의 맥심과 카누(Kanu)는 공식 해외 수출액이 사실상 없습니다. 상표권이 발목을 잡습니다. 맥심은 동서식품이 글로벌 식품 기업 몬델리즈(Mondelez)와 합작하며 국내 판매권만 얻은 브랜드입니다. 계약상 한국 밖으로 파는 길이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현지에 도는 맥심은 대부분 공식 물량이 아닙니다. 개인 무역업자나 수입 벤더가 한국 내수용을 사다 넘기는 병행수입·역직구 물량입니다. 수요가 아무리 커도 회사가 직접 채우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후발 주자들이 맥심이 못 간 길을 대신 걷는다

맥심이 비운 자리를 노리는 곳은 수출 제약이 없는 후발 주자들입니다. 이디야는 자체 스틱 브랜드 비니스트(Beanist)로 해외 수출을 시작했고, 남양유업은 프렌치카페로 수출국을 넓혀 왔습니다. 두 회사 모두 ‘맥심이 못 이룬 K-커피믹스’를 겨냥합니다.

다만 이들의 무대가 동남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니스트는 미국과 중국을 먼저 뚫었고, 프렌치카페는 중국·카자흐스탄·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네시아 같은 시장으로 넓히는 중입니다. 동남아는 여러 목표 시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빈틈은 넓지만, 그 빈틈을 채우는 속도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인도네시아로 실제 팔려 나간 K-커피는 ‘프림’

눈에 보이는 K-커피가 맥심이라면, 통계로 잡히는 K-커피는 전혀 다른 물건입니다. 바로 커피믹스의 핵심 원료인 식물성 크리머, 한국에서 흔히 ‘프림’으로 부르는 제품입니다. 소비자 눈에는 잘 띄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로 수출되는 한국 커피조제품을 금액으로 따지면, 2023년 기준 97.4%가 커피크리머였습니다. 액수로는 약 5,540만 달러입니다. 소비자용 완제품이 아니라, 현지 카페 프랜차이즈와 식품 제조사가 원료로 쓰는 B2B 물량입니다. 동서식품의 ‘프리마’가 대표적입니다.

현지 로컬 인스턴트 브랜드조차 특유의 부드러운 바디감을 내려고 한국산 크리머를 대량으로 들여다 씁니다. 동남아인이 매일 마시는 커피 맛의 밑바탕을 한국 크리머 기술이 받치고 있는 셈입니다.

인도네시아 마트의 커피 진열대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한쪽에는 붉은 카팔 아피가, 다른 쪽에는 직구로 들어온 노란 맥심 봉지가 놓여 있습니다. 눈에는 맥심이 ‘K-커피’로 보이지만, 정작 그건 한국이 공식적으로 판 물건이 아닙니다. 반대로 진짜 한국이 판 커피는 어느 봉지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은 채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