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8일, 자카르타 포스트가 인도네시아 걸그룹 노나(No Na)를 다루며 ‘rising Southeast Asian wave’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한류를 겨눈 말이었습니다. 동남아 팝이 케이팝의 다음 순서라는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관련글: 동남아에서 케이팝 인기 ‘시들’?···동남아 걸그룹이 뜬다)
동남아 걸그룹이 뜬다
성공 사례를 이어 붙인다고 웨이브가 되지는 않아
아시아의 유행 몇 개를 모아 ‘글로벌 트렌드’라 부르는 글은 흔합니다. 잘된 팀을 나열하고 화살표를 그어 다음을 가리키는 방식입니다. 이 나열은 분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공만 이으면 어떤 방향이든 그릴 수 있습니다. 실패는 세지 않으니까요.
자주 함께 묶이는 팀은 인도네시아의 No Na, 필리핀의 BINI, 태국의 4EVE, 말레이시아의 DOLLA 등 넷입니다.
| 그룹 | 국가 | 소속 레이블 | 데뷔 | 특징·성과 |
|---|---|---|---|---|
| No Na | 인도네시아 | 88rising(미국) | 2025 | 데뷔곡 ‘Shoot’ 영어 발매, LA 활동 |
| BINI | 필리핀 | ABS-CBN 스타 헌트 아카데미 | 2021 | 2026 코첼라 선 첫 필리핀 그룹 |
| 4EVE | 태국 | XOXO(워크포인트) | 2020 | 2024 임팩트 아레나 1만 2,000석 매진 |
| DOLLA | 말레이시아 | 유니버설 뮤직 말레이시아 | 2020 | ‘BAD’ 자국 RIM 차트 1위 |
| 자료: 각 그룹 공식 채널 및 빌보드·롤링스톤 등 언론 보도, 2026년 6월 기준 | ||||
네 팀의 소속을 나란히 두면, 인도네시아 팀의 레이블이 미국에 있고 데뷔곡이 영어라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국적만으로는 잘 안 묶입니다.

케이팝을 웨이브로 만든 건 결과가 아니라 구조
케이팝이 세계로 퍼진 과정을 떠올려 봅니다. 곡을 누가 쓰고 누가 프로듀싱했는지, 어떤 세대와 성별이 어떤 플랫폼에서 소비했는지, 어떤 자본이 들어와 어떤 수익 모델로 돌았는지가 함께 움직였습니다. 트레이닝 시스템과 유통망, 팬덤 경제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웨이브’라는 말은 이 맞물림을 가리킬 때 성립합니다. 개수가 기준은 아니었습니다.
동남아 팝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공정합니다. 지금 보이는 건 대체로 결과입니다. 매진된 콘서트, 코첼라 무대, 늘어난 스트리밍 숫자입니다. 필리핀의 BINI는 2026년 코첼라에 오른 첫 필리핀 그룹이고, 2025년 스포티파이 누적 스트리밍 10억 회를 넘겼습니다. 원인 쪽은 아직 흐릿합니다.
이 노래들을 누가 만들고 어디서 소비하는가
소속부터 다시 봅니다. 노나는 미국 레이블 88rising 소속으로, 2024년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활동합니다. 데뷔곡 ‘Shoot’은 영어로 나왔습니다. BINI는 타갈로그와 영어를 섞은 ‘타글리시’로 부릅니다. 말레이시아 DOLLA의 히트곡 ‘BAD’는 스웨덴 작곡가들이 썼고, 태국 4EVE의 최근 영어 싱글은 에스파 곡을 손댔던 프로듀서와 작업했습니다.
묶어 보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이 흐름은 순수한 ‘동남아산’이라기보다, 미국 레이블과 유럽 작곡 캠프, 케이팝 인접 프로듀서, 영어 가사, 미국 페스티벌 무대, 스포티파이·틱톡 유통이 함께 얹힌 구조에 가깝습니다. 지역 시장이 어디까지이고 글로벌 시장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 경계가 이미 섞여 있습니다. ‘동남아 웨이브’라는 한 단어는 이 섞임을 자꾸 가립니다.
자료는 쌓였는데 분석은 제자리인 이유
20년 전보다 자료와 정보는 훨씬 많아졌습니다. 쌓인 건 자료뿐입니다. 그런데 설명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뜨는가’에는 민감하면서, ‘어떻게, 어떤 구조에서 뜨는가’는 잘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뜨지 못하는지는 아예 관심 밖입니다. 성공 사례를 연결해 ‘다음은 동남아’라고 선언하기는 쉽지만, 그 선언을 떠받치는 창작·산업·미디어의 조건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이 이야기가 닿는 지점도 여기 있습니다. 닮은 문제입니다. 국내 평론과 트렌드 보고서가 결과만 관찰하고 원인을 건너뛰는 습관은 그대로입니다. 그렇게 두면 동남아 팀들이 케이팝의 아시안 아메리칸 팬덤을 나눠 갖기 시작할 때, 그 이유를 설명할 언어가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음에 ‘동남아 웨이브’라는 문장을 만나면, 한 가지만 되물어 보면 어떨까요. 이 팀들은 무엇으로 떴고, 그 무엇을 지금 누가 쥐고 있는가. 답이 뉴욕과 스톡홀름과 서울로 흩어질 때, ‘웨이브’라는 한 단어는 과연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 걸까요.